2000년대 후반, 친구들 손에 들려 있던 작고 반짝이는 기계. 그것은 게임기이자 신분증, 그리고 사회생활의 무기였습니다. 바로 소니의 휴대용 콘솔, PlayStation Portable(PSP).
이번 글에서는 PSP가 대한민국 중학생들 사이에서 어떻게 ‘인싸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계 안에서 펼쳐진 몬스터 사냥과 감성 명작들의 추억을 함께 돌아봅니다.
1. PSP를 가진 자, 중심에 서다
누군가 학교 복도에서 가방을 열었을 때, 반짝이는 은색 혹은 블랙 케이스. “야 너도 PSP 있어?” 그 말 한 마디면 바로 친구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 정품 유저는 ‘UMD 디스크’ 모으는 재미
- 커펌 유저는 ‘ISO 파일’로 무한 확장된 세상
- PSP는 게임, 영화, 음악, 사진 전부 담는 올인원 미디어 디바이스였죠
- 버전 숫자(예: 5.50 GEN-D)가 더 중요한 시대
가방 속, 혹은 교복 주머니 속 PSP 하나가 중학교 사회의 서열과 커뮤니티를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던 그 시절.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명작 게임들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2. 학교는 던전, 복도는 사냥터 – 몬스터헌터의 시대
🔹 몬스터헌터 포터블 2nd G
모든 PSP 유저의 입문이자 필수 타이틀. 복도에서, 교실 뒤에서, 심지어 체육 시간 끝나고 잠깐의 쉬는 시간에 파티 플레이.
- “오늘 그라비모스 잡자”, “풀셋 갖췄냐?”, “세팅은 태도냐 해머냐”
- 마을에서 회복약 채우고 → 퀘스트 수락 → 4인 팀 구성 → 헌팅 출격!
- 통신 오류 나면 분노, 파티원 죽으면 “아 진짜 누구야~!”
몬헌은 게임 그 자체를 넘어서 협동, 리더십, 눈치, 예의까지 배우게 했던 소셜 RPG였습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진오우가 잡고 오자”는 식의 약속이 생기기도 했죠.
3. 슬픔을 품은 명작 – 크라이시스 코어: 파이널 판타지 VII
PSP를 가진 자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감성 핵폭탄. 잭 페어의 이야기, 크라우드의 과거, 세피로스의 몰락…
- 마지막 장면 “안녕, 체어맨” → 눈물샘 폭발
- OST ‘Why’와 함께 몰려오는 감정
- ‘슬픈 게임’이라는 개념을 처음 배운 작품
크라이시스 코어는 단순한 JRPG가 아니라, PSP 세대의 감성 교과서였습니다. 게임을 다 끝내고도 멍하니 PSP를 내려다보던 그 순간, 지금도 기억나죠.
4. 커펌과 ISO, 게임을 둘러싼 작은 해커들의 세계
정품 디스크를 사기엔 용돈이 부족했던 시절, 우리는 정보를 공유하고, 펌웨어를 바꾸고, 작은 해커처럼 PSP를 '자유롭게'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 “너 커펌 돼 있어?”가 인삿말
- ISO 폴더 정리하며 '명작 모음.zip' 갖고 다니던 외장메모리
- PS1 게임까지 구동되며, 추억 속 게임도 복습 가능
그 시절 우리에겐 USB 케이블 하나와 WinRAR, 그리고 포맷의 개념만 있으면 뭐든 가능했죠. 커펌은 단순한 해킹이 아닌, 자유와 창조의 상징이었습니다.
5. PSP를 둘러싼 일상 – 작은 기계 안의 우주
- 버스 안에서 이어폰 꽂고 DJMAX 플레이하며 리듬 타던 순간
- 교실 뒤편에서 몰래 영화 보다가 선생님한테 걸린 흑역사
- 음악 플레이어로도 완벽하게 썼던 멀티 기능
- 카툰 렌더링의 나루티밋 스톰으로 ‘차크라 조작’을 배우던 그때
작고 반짝이던 PSP 한 대에, 내 세상이 전부 담겨 있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휴대용 게임기가 아니라 내 감성, 내 우정, 내 취향, 내 자부심의 집합체였죠.
6. 다음 편 예고 – ‘오락실, 동전 한 개로 영웅이 되던 곳’
손안의 콘솔이 지배하던 시절 이전, 손에 쥔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세계를 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킹오브파이터즈, 철권, 메탈슬러그… 그때 오락실은 작은 영웅들의 무대였죠. 그때 그 게임 4부에서는 대한민국 오락실 문화의 전성기를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