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테일(Undertale)》은 2015년에 출시된 인디 게임이지만, 그 철학적 깊이와 감정적 파장은 메이저 게임 못지않습니다. 기존 RPG 공식을 비틀고, 플레이어에게 진짜 도덕적 선택과 책임을 묻는 구조로 설계된 이 게임은 “진짜 착함이란 무엇인가?”, “내 선택의 결과는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윤리적·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통해 언더테일이 어떻게 도덕 철학, 행위 윤리, 메타 게임성을 녹여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1. 기본 구조 – 싸울 수도, 용서할 수도 있다
언더테일의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전투 시스템입니다. 기존 RPG처럼 적을 공격할 수도 있지만, ‘대화’, ‘칭찬’, ‘유머’, ‘용서’ 등의 행동만으로도 전투를 끝낼 수 있습니다.
- 적을 죽이지 않고 모두 ‘살리는’ 방식 = Pacifist 루트
- 필요할 때만 싸우고 나머진 회피하는 방식 = Neutral 루트
- 모든 몬스터를 적극적으로 죽이는 방식 = Genocide 루트
그리고 게임은 단지 루트에 따라 엔딩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행동을 기억하고 판단합니다. “네가 누굴 죽였는지, 그걸 즐겼는지, 후회했는지를 다 기억하고 있어.”
즉, 언더테일은 단순히 선택지를 고르는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윤리적 의도를 읽는 게임입니다.
2. 철학 키워드 ① 행위 윤리 vs 결과 윤리
언더테일의 핵심 구조는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한 행동에 대해 도덕적 결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윤리학에서 오래된 논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 칸트의 ‘행위 중심 윤리’
- 도덕성은 행위의 의도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 ‘착한 결과’가 아니라, ‘착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 진짜 선함이다.
📈 벤담·밀의 ‘결과 중심 윤리(공리주의)’
- 도덕성은 행동의 결과에 따라 판단된다.
- 많은 이에게 이익을 주는 행동이 선이다.
언더테일은 이 두 입장을 모두 체험하게 합니다. 초반에 실수로 몬스터를 죽였지만 후회하며 평화를 택할 수도 있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래도 죽였으면 편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도 생깁니다.
그러나 게임은 냉정합니다. “결과만 착하면 되는 게 아니다. 너의 본심은 무엇이었는가?”
즉, 언더테일은 칸트의 입장에 더 가깝습니다. ‘선한 의도’를 중심으로 도덕을 판단하는 게임이죠.
3. 철학 키워드 ② 메타 윤리 – 게임 바깥에서의 죄책감
언더테일의 또 다른 특징은, 플레이어의 행동이 세이브/로드를 해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메타 게임성(Meta-narrative)이죠.
- Genocide 루트를 플레이하면, 이후 다시 Pacifist 루트를 시도해도 “네 안의 악의”가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 심지어 루트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 전투를 중단하더라도, 게임은 이미 당신을 ‘살인자’로 인식합니다.
이는 철학적으로 ‘선택의 책임’과 ‘의도의 지속성’을 말합니다.
🧠 장 피아제(Jean Piaget)의 도덕 발달 이론
- 아이들은 처음엔 결과 중심으로 도덕 판단을 하지만, 성장하며 의도와 맥락을 고려하는 도덕 판단으로 넘어갑니다.
언더테일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리며, “네가 게임이라고 해서 죽인 그 선택, 진짜 후회하냐?”고 묻습니다.
심지어 플레이어가 진심으로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합니다:
- Genocide 루트에서는 각 몬스터들이 점점 인간적인 반응을 보임
- 샌즈(Sans)의 보스전은 게임이 아니라 처벌에 가깝습니다
- 플레이어가 ‘살인자’가 되는 과정을 정교하게 구성함
4. 철학 키워드 ③ 용서, 공감, 그리고 진짜 ‘착함’
Pacifist 루트의 진정한 힘은 공감과 대화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적을 이해하고, 타이밍에 맞게 대화하고, 때로는 유머를 쓰고, 칭찬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은 단순히 전투 시스템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폭력을 쓰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더 어렵고도 깊이 있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 레프 톨스토이 – 비폭력과 도덕적 용기
- “진정한 도덕은 누구를 처벌할 권리보다, 용서할 용기에서 비롯된다.”
언더테일은 이 철학을 시스템에 심어둡니다. 심지어 적이 항복하거나 도망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하죠. ‘비폭력은 더 많은 인내와 이해가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게임 플레이로 느끼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5. 샌즈와 플레이어 – 도덕적 평가자로서의 NPC
샌즈는 게임 내내 유쾌하고 무심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Genocide 루트에서는 플레이어를 직접 처벌하는 심판자로 변모합니다.
- “넌 매번 저장하고, 실험하고, 되돌리며 모든 가능성을 다 확인하잖아.”
- “넌 그냥...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싶었던 거지?”
이 대사는 플레이어의 본심을 꿰뚫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도덕적 판단이란,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샌즈는 단순한 보스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윤리적 의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넌 정말 착하려고 했던 거야? 아니면...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야?”
6. 결론 – 착함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다
- 언더테일은 ‘착한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뛰어넘어,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를 묻습니다.
- 도덕은 시스템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의식, 태도, 감정속에서 판단된다고 말합니다.
- 그래서 이 게임은 도덕 철학의 실험실이자, 윤리학 교과서보다 더 효과적인 체험형 철학 수업입니다.
무엇보다, 언더테일은 기억합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걸 후회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반복했는지.”
📢 다음 편 예고:
게임 속 철학 7부 – 인사이드(INSIDE): 자유를 향한 절망의 퍼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임. 그러나 플레이어는 느낍니다. 통제, 군중, 감시, 자유 의지. “나는 정말 나의 의지로 움직였는가?” 디스토피아적 침묵 속에서 던지는 강렬한 철학을 함께 파헤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