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에서 등장했지만, 모두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주체로 살아가려는 인간의 고통과 선택을 다룹니다.
두 작품의 주인공인 해리 듀부아와 뫼르소는 사회적 기준, 도덕, 체계에서 벗어나 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실존적 인물들입니다.
이 글에서는 디스코 엘리시움과 『이방인』을 통해 부조리, 자아, 선택, 죽음이라는 실존주의 핵심 개념을 심도 있게 탐구해보겠습니다.
1. 존재의 시작 – 망각과 무감각으로 열리는 세계
🍷 디스코 엘리시움 – 기억을 잃고 깨어난 형사
해리 듀부아는 이름도, 직업도, 정체성도 기억하지 못한 채 낯선 호텔방에서 속옷 차림으로 깨어납니다.
- 거울 속 자신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함
- 자신이 형사였다는 사실도 타인을 통해 알게 됨
- 조사해야 할 사건보다도, 자신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
게임은 사건 해결보다 자아 탐색의 여정으로 흘러갑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선, 먼저 세계가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를 이해해야 하며, 그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사실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 『이방인』 – 무덤덤한 주인공의 시작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장례식에서 담배를 피웁니다.
그는 세상이 요구하는 감정적 행동이나 도덕적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냉정하다고 비난하지만, 실은 그는 세상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는 거짓 감정을 연기하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그를 사회로부터 ‘이방인’으로 만들죠.
2. 부조리한 세계 – 의미 없는 법칙, 감정 없는 현실
🎲 디스코 엘리시움 – 의미 없는 규칙의 도시, 레바숄
게임의 배경인 레바숄은 한때 혁명이 일어났지만, 실패로 끝난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이제 국가도, 질서도, 정의도 없는 폐허입니다.
- 경찰은 무력하고, 정치세력은 부패했으며
-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만을 추구
- 진실은 모호하고, 사람들은 무관심
이 세계는 규칙이 없는데도, 규칙이 있는 척합니다. 듀부아는 그 안에서 점점 깨닫습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건 해석과 권력의 싸움일 뿐이다.”
🌇 『이방인』 – 법정이라는 연극
뫼르소는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살해합니다. 하지만 재판은 그의 행위보다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실에 집중됩니다.
법정은 그를 인간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선고합니다.
그는 살인을 했기에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감정 코드를 무시했기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은 셈이죠.
이 세계는 ‘합리적 질서’를 갖춘 듯 보이지만, 실은 이해할 수 없고, 불합리한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죽어야 한다.”
3. 자아의 탐색 – 나는 누구인가?
🧠 디스코 엘리시움 – 목소리들과의 대화
듀부아는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내면의 수많은 ‘목소리’들과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 논리, 직관, 자존심, 감정, 통찰력 등
- 이 목소리들은 주인공의 성격, 성향, 세계 인식을 만들어감
-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물로 형성됨
즉, 자아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황과 선택 속에서 구성되는 흐름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듀부아는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과거의 죄를 후회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정당화하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선택하며 새로운 자아를 ‘창조’해 갑니다.
🪞 『이방인』 – 타인이 정의한 나는 누구인가?
뫼르소는 사회가 기대하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재정의당합니다.
그는 사회에 의해 무감정한 괴물, 비인간적 존재로 낙인찍힙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나는 진실했을 뿐이다.”
그에게 자아란 타인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하고 수용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즉, 나는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실존주의적 자기 정의입니다.
4. 죽음 앞에서 삶을 이해하다
💀 듀부아 –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 의미 없는 삶
게임 내내 듀부아는 술, 약물, 환각 속에서 도망칩니다. 그는 과거의 실수와 현재의 무력함을 견디지 못하고 현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하지만 특정 선택지를 통해 그는 자신이 마주한 부조리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썩었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 안에서 존재할 수 있다.”
⚖ 뫼르소 – 죽음 앞에서 삶을 수락하다
사형이 확정되고, 신부가 마지막 종교적 위로를 건넬 때 뫼르소는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내 삶을 선택했고, 그 끝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죽음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삶을 완성합니다. 이 장면은 카뮈가 말한 실존적 반항, 즉 부조리한 세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결단을 상징합니다.
5. 실존주의의 핵심 – 의미는 내가 만든다
🧩 카뮈의 철학 – 부조리와 반항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삶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이다.”
뫼르소는 끝까지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삶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침묵의 우주 속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 디스코 엘리시움의 철학 – 자아는 선택의 누적이다
듀부아는 기억이 없지만, 그 기억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선택들입니다.
- 그는 부패한 형사가 될 수도, 진실을 추구하는 철학자가 될 수도
- 과거를 덮고 도망칠 수도, 직면하고 화해할 수도 있음
게임은 말합니다:
“삶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도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다.”
이는 실존주의의 핵심 메시지와 일치합니다. 우리는 삶을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 결론 – 이방인인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다
《디스코 엘리시움》과 『이방인』은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잃은 인간이 다시 자기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그립니다.
- 세상은 부조리하고, 도덕은 불확실하며, 의미는 없다
-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 그 선택이 바로 나를 ‘존재’하게 만든다
뫼르소도, 듀부아도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실패자입니다. 하지만 실존적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자기 자신으로 끝까지 살아낸 인간입니다.
나는 세상이 정의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나는 나를 선택함으로써 존재한다.
📢 다음 편 예고:
게임과 문학 시리즈 6부 –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 『어톤먼트』
선택이 삶을 바꾸는가, 후회는 구원을 부를 수 있는가? 시간을 되돌리는 소녀와, 잘못된 고백을 한 소녀. 두 작품은 선택, 용서, 후회, 시간에 대한 섬세한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