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게임과 문학 시리즈 3부 – 나는 왜 이 모습이 되었는가? (INSIDE × 『변신』)

by HaGT 2025. 3. 31.

게임과 문학 시리즈 3부 – 나는 왜 이 모습이 되었는가? (INSIDE × 『변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Playdead의 게임 《INSIDE》는 매우 다른 시대, 다른 매체에서 등장했지만, 놀랍도록 닮은 철학적 고독과 실존적 불안을 공유합니다.

말없이 벌레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 그리고 말없이 세상을 떠도는 이름 없는 소년. 이들은 모두 “자아의 붕괴”와 “존재의 비가시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잃어갑니다.

이번 글에서는 《INSIDE》와 『변신』이 어떻게 언어 없는 절망, 정체성의 상실, 사회적 소외를 그려냈는지를 스토리, 구조, 상징, 철학으로 깊이 있게 해석합니다.


1. 시작은 충격,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설명 없음’

🐛 『변신』 – 벌레로 깨어난 아침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 작품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 변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지어 주인공 자신도 이를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고, 출근은 해야겠는데...”

이 무덤덤함은 독자를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나도 어느 날 벌레처럼 무력한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

👦 《INSIDE》 – 이유 없는 도주

게임 INSIDE는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시작됩니다. 한 소년이 어둠 속에서 도망칩니다. 무엇으로부터? 왜? 어디로? 이유는 없습니다.

  • 검은 숲, 감시자들, 탐지 드론
  • 기계 같은 인간 무리, 실험실, 수조 속 생명체

게임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직 움직임과 분위기로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나는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도망치고 있을 뿐이다.”

이 무력한 도주, 설명되지 않는 존재 상태. 이것이 두 작품의 출발점입니다.


2. 존재가 부정당할 때,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 『변신』 – 나는 가족에게조차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잠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아침 출근하는 성실한 세일즈맨이었습니다. 하지만 벌레가 된 이후, 가족은 그의 존재를 점차 감정 없는 대상으로 다룹니다.

  • 처음엔 걱정 → 곧 공포 → 결국 혐오
  • 그는 더 이상 ‘그레고르’가 아니라 ‘방에 있는 괴물’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누이 그레테가 그를 “그레고르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순간입니다.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의 언어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감정도 전달되지 않으며, 그가 누군지조차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습니다.

🎮 《INSIDE》 – 말할 수 없는 존재, 말해지지 않는 의도

INSIDE의 주인공도 이름이 없습니다.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존재하지만, 시스템 속에서 완전히 익명화된 상태입니다.

  • 행렬 속 군중들과 구분되지 않는 소년
  • 조종당하는 인간들, 실험체로 전락한 존재들

그가 탈출하려고 애쓸수록 더 큰 감시, 더 심한 통제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이 세계는 나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이 ‘사람’이 아니라 대상화되고 그 안에서 고립된 철학적 존재의 해체를 보여줍니다.


3. 육체와 자아, 그 뒤바뀐 관계

🧍 『변신』 – 내 몸은 내가 아니다

잠자는 몸이 벌레로 바뀐 이후, ‘몸’은 바뀌었지만, ‘자아’는 여전히 인간입니다.

그는 배가 고프고, 추위를 느끼며, 누이의 음악에 감동하고, 창밖의 햇살을 그리워합니다.

즉, 그는 여전히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외형만으로 그는 인간성을 잃었습니다.

그의 몸은 이제 감옥입니다. 자아를 드러낼 수 없는 껍데기. 가족은 그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그를 제거하려 합니다.

🧠 《INSIDE》 – 자아 없이 조종당하는 몸

게임에서는 기계를 통해 타인의 몸을 조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년은 머리에 장치를 꽂고, 인간형 좀비들을 움직입니다.

이때 그 조종당하는 존재들은 말이 없고, 반응이 없으며, 그저 기계처럼 움직입니다.

이 설정은 충격적인 메타포를 포함합니다:

  • 조종당하는 자 – 인간성이 지워진 육체
  • 조종하는 자 – 타인의 몸을 도구화한 지배자

게임 후반에는 소년이 거대한 생명 덩어리(Huddle)와 융합됩니다. 이 육체는 수많은 인간 조각의 합성체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소년’도 아니고, 명확한 자아를 지닌 존재도 아닙니다.

육체는 존재하지만, 자아는 희미해집니다. 즉, 두 작품 모두 몸과 자아의 분리/붕괴를 극단적으로 묘사합니다.


4. 침묵 – 가장 강력한 언어

🔇 『변신』 – 말이 되지 않는 외침

잠자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내지만, 인간의 언어로 들리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말을 걸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육체의 문제를 넘어 “내가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의 존재는 점점 무음의 괴물이 되어갑니다. 즉, 침묵은 강요된 것이자, 정체성 상실의 상징입니다.

🔇 《INSIDE》 – 말이 없는 게임, 그러나 모든 것을 말한다

INSIDE는 단 한 줄의 대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년이 느끼는 감정과 그를 둘러싼 세계의 기괴함을 고스란히 체험합니다.

  • 배경의 톤, 조명, 움직임으로 감정을 전달
  • 플레이어는 말 없이 해석하고 감정 이입함

이러한 ‘침묵의 내러티브’는 카프카적 불안과 깊이 연결됩니다. “나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절박하다.”

INSIDE는 바로 이 침묵의 철학으로 실존적 불안을 플레이어에게 경험시킵니다.


5. 엔딩 – 죽음인가, 해방인가?

🪦 『변신』 – 죽음이 구원이 된다는 슬픈 진실

잠자는 점점 말라가고, 식사도 거부합니다. 결국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은 안도합니다.

“그는 이제 사라졌다. 그들은 이제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이 말은 너무도 냉혹합니다. “너의 부재가 곧 세계의 회복”이라는 메시지. 잠자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그는 존재 자체로 ‘폐기’되었습니다.

💀 《INSIDE》 – 정체 불명의 해방, 혹은 또 다른 감금

소년은 거대한 실험체와 융합된 후, 시설을 부수고 탈출합니다. 그리고 한 줄기 햇빛이 비치는 언덕에 쓰러지며 게임은 끝납니다.

이 장면은 해방처럼 보이지만, 의심이 남습니다:

  • 햇빛 속 언덕이 실험실의 또 다른 층이라는 해석
  • 거대한 존재는 감정 없이 조용히 멈춰 있음
  • 자유가 아닌 ‘정교한 감금’일 수 있음

결국 INSIDE는 이렇게 묻습니다:

“넌 이 모든 여정의 끝에서, 진짜 너 자신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니?”

📚 결론 – 나는 왜 이 모습이 되었는가?

『변신』과 《INSIDE》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메시지를 공유합니다:

  • 정체성의 붕괴: 나는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 사회적 소외: 존재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
  • 언어의 단절: 말해도 닿지 않는 외침
  • 육체 vs 자아: 몸이 바뀌면 나는 사라지는가?
  • 죽음과 해방: 사라져야만 인정받는 비극

이 두 작품은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외침으로 들립니다.

나는 지금 누구이고, 왜 이렇게 되었으며, 이 상태는 나인가?

그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아직 인간일 수 있습니다.


📢 다음 편 예고:

게임과 문학 시리즈 4부 – 레드 데드 리뎀션2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라지는 시대, 몰락하는 영웅. 아서 모건과 안톤 시거, 그들의 이야기에는 정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무거운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시대의 끝’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만나요.